예전에 썼던 이쪽 세계관 공유
아마 내가 쓰는 현대물 아벨시호 시호아벨은 다 이쪽 라인일 것 같은데.
"아메리카노!"
카페 점원에게 큰 소리로 커피를 주문한 시호는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는 내내 싱글벙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즈음 들어, 직장일로 쉴 새 없이 바쁘던 아벨 때문에 시호는 혼자 집을 봐야 하는 일이 잦았다. 왜 자꾸 늦게 오는 거야. 미안합니다. 부루퉁한 목소리로 그에게 매달려도 아벨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멋쩍은 웃음 속에서 숨길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나와, 시호는 더 이상 따질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벨이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끝난 것이었다. 일찍 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아벨을 시호는 환한 얼굴로 반겼다. 아직 해도 다 지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아벨의 와이셔츠에 뺨을 부비는 시호를 쓰다듬으며, 아벨은 시호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습니까?"
"응! 좋아!"
"그럼, 카페에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오랜만에 저도 쉬고 싶네요."
"카페? 쉬는 거야?"
"네.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도 하고, 책도 읽고, 여유를 즐길 수 있지요."
"아벨이 가면 나도 갈 거야."
"알겠습니다."
아벨은 옷장을 열어 시호에게 입힐 옷을 꺼냈다. 바지 한 장만 걸치고 집 안을 우다다 뛰어다니고 있던 시호의 어깨를 붙잡아 데려왔다. 뭐 입을래요? 흰색과 파란색의 후드티를 옷걸이 채로 꺼내 시호에게 보여주자, 파란색! 시호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아벨은 파란 후드 티셔츠를 입혔다.
꼬리는 보이지 않게 겉옷 안에 잘 갈무리해 넣었다. 장난이라고 받아들인 듯 자꾸만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는 시호의 이마에 꿀밤을 한 대 때린 뒤, 귀를 가릴 수 있게 후드를 뒤집어 씌웠다. 현관으로 나서며 신발을 신긴 뒤, 자신도 구두를 신은 후 시호에게 양 팔을 내밀었다. 이리 와요, 시호. 양복 소맷자락 사이로 몇 주 전 시호가 새긴 팔의 상처가 엿보였다. 약간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며, 시호는 아벨의 품 안에 포옥 안겼다. 여우 소년은 아주 가벼웠다.
도착한 카페는 적당히 한산했다. 아벨이 사람으로 가득 찬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고, 혹시라도 시호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 배려도 있었다. 그는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고는 시호를 제 무릎에 내려놓았다. 시호는 신기한 듯 주변의 목재 탁자들과 따뜻한 조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호, 이거 보세요."
"응?"
아벨이 메뉴가 적힌 종이를 시호에게 내밀었다. 시호는 눈을 작게 뜨며 글씨를 읽으려 애썼다. 커... 피. 아이... 스, 천 오백...... 자제분이신가 봐요. 옆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여성이 말을 걸었다. 아이가 참 귀여워요. 예뻐라. 아, 예. 감사합니다. 아벨은 저도 모르게 시호의 머리를 덮은 후드를 꽈악 내리눌렀다. 시호가 잠시 버둥거렸다.
"너는 뭐 먹을 거야?"
"네?"
"너 뭐 먹을 거냐고."
"네?"
"아이...... 아벨은 뭐 먹을 거...야...요."
"저는 커피요.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됩니다."
"맛있어? 무슨 맛이야?"
"음, 글쎄요. 어른의 맛?"
순간, 후드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아벨은 누가 볼세라 시호를 품 안으로 숨겼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에게는 젊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카페 나들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벨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무슨 일이냐고 묻기 위해 시호에게 눈을 맞추었다. 시호의 눈은 금방이라도 별똥별이 떨어질 것 마냥 반짝이고 있었다.
"어른의 맛? 어른? 정말 그걸 먹으면 어른이 될 수 있어?"
"그... 건 아니..."
"네가, 아니, 아벨이 먹는 거 나도 마실 거야!"
빨리 빨리! 시호는 아벨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이래서야 정말 애 하나 키우는 모양새로군. 아벨은 피식 웃었다. 팜플렛을 내려놓은 아벨은 카운터로 걸어가, 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주문해도 되겠습니까?"
"네. 무엇을 드시겠어요?"
"아메리카노!"
시호가 끼어들며 외쳤다.
"...두 잔 주세요."
아벨이 말을 맺었다.
뜨거운 김이 머그잔을 타고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시호는 홀린 듯 옅어져 가는 아지랑이에 넋을 잃고 있었다. 먼저 커피에 입을 댄 아벨이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마셔 보세요. 뜨거우니까 조심하시고요."
"그러니까, 이걸 마시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거지."
"......"
아벨은 입을 다물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소년의 희망을 깨지 않고 진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미안하다 사과하면 될까? 아벨은 시호에게 말을 걸기 위해 그의 여린 어깨에 손을 얹으려던 참이었다.
시호가 양 손에 머그잔을 들고 눈을 꽈악 감은 채 커피를 삼켰다.
"써어어어어!"
비명에 가까운 감상을 내뱉으며, 시호는 그만 마시던 커피를 뱉어 버렸다. 아벨은 놀라며 옆에 있던 냅킨으로 시호의 입술을 닦아 주었다. 괜찮아요? 데인 건 아니예요? 입을 벌려 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찔러 넣어 보았지만, 다행히 입 안은 괜찮은 듯 했다. 역시 쓴 맛이 문제였군. 아벨은 방금 전까지 고민하던 어른의 맛에 대한 변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못... 못 먹겠어. 이게 뭐야!"
"괜찮아요. 시호가 못 먹는 건 이상한 게 아니예요."
"내가... 내가 어른이 아니라서 그래?"
아벨은 시호를 내려다보았다.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시호를 그냥 바라보자니 마음이 쓰렸다. 역시 말해야 하나. 아벨은 무심코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에게 시선이 미쳤다. 그녀가 휴대폰과 함께 들고 있는 영수증에는 작은 글씨로 라떼라 적혀 있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시호를 안아들어 반대편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히고, 카운터로 다가가 무언가를 추가로 주문했다.
시무룩하게 다리를 흔들던 시호의 눈 앞에, 빈 머그잔과 스푼, 그리고 따뜻한 하얀 액체가 담긴 머그잔이 놓였다. 시호가 고개를 들자, 미소를 띄고 있는 아벨이 보였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마술을 보여 드릴게요."
"뭐?"
아벨은 시호가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다른 컵에 약간 담아내었다. 그리고 흰색의 액체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함께 가지고 온 스푼으로 조심스럽게 커피를 젓자, 약간 옅어진 색의 아메리카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마셔 봐요."
"먹어도... 난 어른 아닌걸..."
"걱정 마세요. 제가 시호는 멋진 어른이 될 거라는 걸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벨의 재촉에, 시호는 머뭇거리며 머그잔을 들었다. 고민 끝에 겨우 입을 댄 아메리카노는 아까 전의 커피보다 훨씬 마시기 좋았다. 시호는 반색하며 한 모금을 더 마셨다. 먹을 만 한거 같아. 괜찮아. 진짜 마술을 부린 거야, 아벨? 아벨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세 개의 머그잔을 번갈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건 우유예요. 시호."
"우유?"
"영국에서는 이 아메리카노 말고 또 다른 아메리카노가 있어요. 화이트 아메리카노예요. 그래서 그쪽 사람들은 블랙과 화이트로 구분합니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은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더 넣으면, 그게 화이트 아메리카노가 되는 거죠."
"......"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벨은 괜찮다며 후드 위로 시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쨌든, 이걸 마셨으니 이제 시호는 어른이 될 거예요."
"정말이지? 나도 아벨처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럼요."
시호는 베시시 웃었다. 마음에 든다며 연거푸 커피를 마시는 시호를 보다, 뒤늦게 아이에게 카페인을 얼마 정도까지만 마시게 해야 하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중간에 빼앗을 수도 없고...
그렇게 시호는 밤새 자지 않았다. 놀아 달라며 조르는 시호를 상대하느라 진이 쏙 빠진 아벨은, 다음 날 답지 않게 늦잠을 자 회사에 지각하고 말았다.
"자네답지 않군.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해서 회사 일이 끝난 것은 아니네. 알고 있지?"
"죄송합니다..."
계속 고개를 숙여 사죄하는 아벨의 머릿속엔 행복한 얼굴로 화이트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시호가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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