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뒷산에 커다란 털북숭이 괴물이 나타났다던가, 새벽마다 거대한 동물이 나무 사이를 뒤지며 버려진 음식 쓰레기를 뒤진다던가. 그런 대충 듣기에도 이상한 소문. 그러나 허구한 소문이라 듣고 넘기기엔 목격담들이 너무 많아, 요 며칠 동안에는 경찰 십여 명이 나서 산을 이 잡듯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밝혀진 것은 없었다는 모양이었다.
블마는 어느 동물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이었다. 경찰들의 수색에도 밝혀진 것 하나 없었기에 산 속 털북숭이 괴물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만 갔다. 자연히 블마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몇 번인가 괴물이 출현했다는 산에 올라 새벽 내내 자리를 지켰던 적이 있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백지였다. 그는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블마는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찍 한 기자가 신문에 실을 기사를 내고 싶다며 인터뷰를 신청해 왔다.
명함을 받았지만 들어본 적 없는 신문사였다. 자세히 물으니 그냥 작은 동네 신문이라 한다. 블마는 다른 질문을 꺼냈다. 무슨 주제에 대한 기사입니까. 기자는 비밀 이야기를 한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산 속의 괴물... 괴물에 대해 아십니까? 선생님도 그 산 속의 괴물에 대해 알아보신 것이 있으시죠? 시간이 꽤 지났으니 그것에 대해 윤곽이 잡히셨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는 아직도 사람들이 산 속 괴물에 대해 관심을 가져 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블마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기자로군.
싱글벙글한 얼굴을 한 기자를 발로 차 내쫓는 대신, 블마는 당근을 쓰기로 했다. 먹이가 부족해 거처를 옮긴 동물의 사례를 들며 '아마 그 괴물도 비슷한 부류일 겁니다' 라며 관련된 책의 페이지도 몇 장 펼쳐 주었다. 기자는 신났다는 듯 펼쳐준 책의 제목과 저자를 물어 왔다. 블마는 기자의 질문이 전부 끝날 때까지 하나하나 친절한 미소와 함께 답해 주었다. 몇 시간 뒤 기자는 만족해하며 돌아갔다.
"바보 같군."
블마는 멀어져가는 회색 세단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여섯 잔 째의 커피를 주욱 들이켰다.
"그리고 미련이 남아 다시 이곳에 온 나는 한술 더 뜬 멍청이야."
쉬지 않고 툴툴거리며, 블마는 제 몸을 덮은 담요를 더욱 끌어당겼다. 새벽이라 약간 쌀쌀하다. 낮에 만난 기자가 말한 산 속의 괴물. 지금까지 그 정확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무성한 소문의 주인공. 저번에 왔을 적에 찾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꼭 찾을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블마는 끔벅끔벅 눈을 감았다 떴다. 배가 고프다. 아무래도 하루종일 커피를 손에 잡히는 대로 마셔서 하루종일 배가 부르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담요 속에서 손을 움직여 가방 지퍼를 열고 초코바 한 덩어리를 꺼냈다. 아니야, 부족해. 고개를 저으며 한 덩어리를 더 꺼낸다. 담요를 고쳐 둘러 팔을 밖으로 낸다. 마침 체면 차릴 필요도 없겠다, 블마는 급한대로 손가락보다 긴 초코바를 입 안에 밀어넣는다. 이로 초코렛을 자르고 계속해서 씹는다. 진한 초코향이 주변을 맴돌았다.
열심히 씹어 하나를 다 삼키고, 손에 들고 있는 나머지 한 덩어리를 입 안에 넣는다. 다시 우물우물 초코바를 씹는다. 맛있다. 배고프다. 아직 다 삼키지도 않은 초코바를 계속 씹으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부스럭 부스럭. 아, 찾았다. 가방 지퍼를 닫고 다시 담요를 둘렀다. 부스럭 부스럭. 블마는 고개를 갸웃한다. 오늘따라 주변이 시끄럽군. 그 괴물도 이렇게 시끄러워서는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나오질 않겠는데.
"으으..."
"뭐?"
블마는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털북숭이 괴물. 산 속의 거대한 동물. 머리에 난 긴 털은 정리되지 않은 채 까슬까슬하게 엉켜 있었고, 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나신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블마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제 앞에 나타난 그림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쟤가 털깎으면 레피 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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