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사람 귀찮게 하는 데는 선수군. 속이 배배 꼬이지 않아서야 이렇게까지 우리를 괴롭히려 할 리가 없지. 안 그래?”
“떠벌떠벌 말할 기운이 있으면 걷는 데에 좀 더 할애하는 건 어때.”
“뭐? 나 이미 걸어가고 있는데?”
“입 닥치라는 소리야.”
한시도 입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루나틱 사이커를 째려보며, 마스터 마인드가 중얼거렸다.
별반 다르지 않은 주민들로부터의 부탁. 또는 엘 수색대로서 해야 할 임무. 루사와 마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임무 중이었다. 이번에는 페이타에서 벌어지는 괴상한 현상들을 처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 괴상한 현상이라 함은.
“으아아! 제기랄 유령!!”
“마마너이자식 내뒤로오면 나보고어쩌라는거야네가먼저발견했으면막아줘야하는거아니냐!!”
“몰라네가막아!”
의외로 담력이 강해 보이는 둘도 과학과 전혀 관계가 없는 유령과는 연이 없었던 모양이다.
지하 복도의 벽을 뚫고 간간히 나타나는 그 보라색 로브를 뒤집어 쓴 그 '무언가' 가 문제였다. 그것이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괴상한 주문을 외우면 으스스한 보랏빛 유령이 튀어나와 둘에게 달려들곤 했다. 그때마다 도망치기 바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와중에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라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이곳, 지하 예배당은 이동 마법진이고 문이고 뭐고 상당히 아리송한 지리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번 길을 잘못 들면 이미 왔던 곳으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건 나선 회랑만으로도 족해.”
“동감이다.”
루나틱 사이커는 얼굴을 확 찡그리며 대답했다.
저쪽 복도에서 다이너모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루사와 마마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길은 찾았냐? 너 정도의 AI라면 그 정도는 껌으로 찾아낼 수 있겠지. 못 찾았으면 너흰 오늘 집에 가서 죽었어. 열 두 개의 다이너모들은 사시나무 떠는 듯 빌빌거리며 땅바닥에 철푸덕 널브러졌다.
“이런 빌어먹을 고철덩어리..”
“야, 루나틱 사이커. 나 힘들어, 못 걷겠다고.”
“벌써 지쳤냐? 하여간 체력하고는.”
“그래그래, 알았어. 나 약해. 나 지쳤어. 그러니까... 빨리 길이나 찾아 오라고!!”
마스터 마인드가 주저앉은 채로 플릭 디스크를 날려 루사의 이마를 때렸다. 빡 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루사는 이마를 한 번 긁적여주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쿨한 자식. 마마는 굉장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루사를 쫓아내었다.
“10분 내로 다녀와.”
“알았다고. 어디 사는 누구씨는 체력이 저질이라 내가 가야겠네요-.”
“이게..”
바닥에 널브러져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다이너모들을 발로 툭툭 차는 루사였지만, 이상하게도 열 두 개중 일어나는 기색을 보이는 다이너모는 단 한 개도 없었다. 루사는 똥 씹은 표정으로 몸을 홱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어차피 다이너모도 유령 앞에선 꼼짝도 못하니까. 도움 안 될 거야.
멀어져가는 루나틱 사이커의 등을 바라보다가, 마마는 곧 흥미를 잃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지금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다이너모들이었다. 쇼크를 먹어도 좀 심하게 먹은 건가? AI의 담력 수치를 좀 더 강화하지 않으면.. 그는 여러 가지 조건을 염두에 두면서 시스템 변경 알고리즘을 머릿속에 그려 나갔다. 마침내 하나의 설계도를 완성시킨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루사에게 길을 찾는 것을 맡겨놓긴 했지만, 자신도 놀고 있는 편보다는 다른 방향을 둘러보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마마는 끄응, 하면서 고철덩어리들을 내려다보고는, 곧 양 팔에 한가득 다이너모를 안아들었다. 역시 기계라서인지 무게는 가벼운 편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소재도 바꿔야 하나? 그는 할 일 참 많다며 투덜거렸다.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던 마스터 마인드는, 곧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듯한 작은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복도의 벽에 간간히 켜져 있는 불빛도 희미하기에 계단의 형체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못 봤던 거였군. 마마는 넘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얼마 정도를 내려갔을까, 마마의 눈에 비친 것은 환하게 밝혀진 실험실이었다. 위쪽의 복도는 음침하게 만들어 놨더니만, 이런 곳은 잘도 불을 켜고 있었다고 코웃음을 치고는, 마마는 실험 키트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뼛속까지 오컬트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런 구석도 있었군.”
이리저리 얽혀 있는 고무관들과 몇 초 간격으로 전기적 스파크를 튀기는 장치, 가열되고 있는 물이 담긴 플라스크. 꽤 복잡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실을 보며 조용히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걸어가다 무언가를 건드린 듯, 갑자기 경보음이 울렸다. 마마는 크게 놀라며 몸을 뒤로 빼다가, 그대로 머리를 벽에 붙은 선반과 부딪혀버리고 말았다. 머리를 움켜쥐기도 전에, 황금빛 액체가 담겨 있는 둥근 플라스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깨졌다.
“윽..!”
분명 액체였던 플라스크의 내용물은 공기와 만나자마자 기체로 변하며 마마를 덮쳤다. 마스터 마인드는 눈을 감으며 콜록콜록 기침을 했지만 기체는 구름처럼 실험실 전부를 잠식해 나갔다. 정상적인 공기를 마시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마는 어떻게든 다이너모를 깨워 공기 청정 시스템을 가동하라고 명령을 내리려 했다.
갑자기 눈 앞이 빙글빙글 돌면서 흐려졌다. 몸까지 무거워지는 기분에 마마는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저쪽 복도로 이어지는 길을 죽 따라가면 이곳 짱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 유령 놈들이나 다른 몬스터들의 밀집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어. 그렇다면 그놈을 쓰러뜨리면 길이 열리겠지. 귀찮은 임무도 싹 완료할 수 있겠고... 마스터 마인드?”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루나틱 사이커는 이곳저곳을 빠르게 뛰어다니며 어딘가로 향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길을 찾아내려 애썼다. 마마와 약속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위상 변화 장치의 설치에도 힘을 쏟아, 길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으면 싸우는 방법보다 회피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단축시켰다.
하지만 돌아온 지금, 마스터 마인드는 자리에 없었다.
드문드문 켜져 있는 희미한 불빛을 쏘아보며 루사는 생각에 잠겼다. 마스터 마인드는 어딜 갔을까. 힘들다고 징징거렸으니 가봤자 그렇게 멀리 가지 못했을 텐데. 그는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또다른 길이 들어왔다. 불빛도 켜져 있지 않은 어두운 지하 계단이었다. 하지만 루사는 그마저도 귀찮다는 듯 계단 한 세트씩을 뛰어내려가며, 마마라면 발목이 부러지고도 남았을 충격을 그는 코웃음치며 받아내었다.
그리고 그 장소를 발견했다. 방금 전까지의 복도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환하게 켜져있는 불빛 아래로 연구실로 보이는 장소가 있었다. 이런 곳에 마마가 있을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루사는 안에 들어섰다.
“......뭐야.”
저쪽에, 그가 찾던 마스터 마인드가 있었다. 쓰러진 채로. 루나틱 사이커는 아연실색하며 그에게로 달려갔다.
2014/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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