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 왔다. 붉은 머리카락의 남학생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창문에 노을이 비쳐 학원의 건물은 아주 붉어 보였다.
"왜 그래, 엘소드?"
"아니.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서."
"곧 축제니까 그렇겠지. 우리 학원 오케스트라는 연습이 고되기로 유명하다고."
그의 옆에 나란히 서서 걸어가던 여학생이 대답했다. 엘소드는 그녀를 위해 몰랐다는 표정을 지어 주기로 했다. 과장된 몸짓과 함께. 저엉말~? 난 전혀 몰랐어 아이샤! 역시 넌 대단해! 예상했던 발길질이 날아오기 전에 엘소드는 운동장의 모래를 박차며 달렸다. 거기 안 서 엘소드? 도망치기 없기야! 뒤쪽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샤의 고함에 묻힌 것인지 연주가 끝난 것인지 더 이상 음악은 들려오지 않았다. 엘소드는 제발 후자이기를 바라며 본의 아니게 연주를 방해하게 되어 미안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 바이올린 소리가 아주 귀에 낮익어서, 그는 아이샤에게 따라잡혀 뒷통수에 꿀밤을 맞으면서도 멜로디를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이고 있었다.
"연주가 끊겼군요."
"...사실은 별로 켜고 싶지도 않았어."
한 소절도 채 연주되지 못한 바이올린은 에드워드의 손을 떠나 여자에게로 돌아왔다. 에드워드는 그것을 그대로 가죽 케이스에 넣는 아라를 지켜보다 말을 이었다.
"오래 된 물건인 것 같군."
"다른 분이 쓰시던 물건입니다.
"묘하게 익숙한데."
"그러셨나요?"
"그래. 그러니까 네 제의는 거절하도록 하지. 다른 사람을 찾아 봐."
바이올린의 케이스 뚜껑을 닫던 아라가 동작을 멈추었다.
"이해를 못 했나 보군. 네 어장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곧 축제 기간이란 건 알고 있어. 네가 오케스트라의 퍼스트 바이올린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그걸 믿고 적당한 남자 하나 꼬셔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모양인데. 난 그런 건 사절이야."
"저는 그저... 당신이 원래 바이올린을 아주 잘 켰다는 것을 듣고. 분명 이 학원에 오셔서도 저와 함께 연주를 하고 싶어하실 것이라 생각해서..."
그녀는 눈물을 찍어 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여자야. 에드워드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다가, 순간 스쳐 지나가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아라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 보았다.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것인가? 게다가 이 얼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잠깐만. 이봐, 너."
"정말 저와 합주를 해 주시지 않으시는 건가요?"
"너... 누구야."
아라의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이마 뒤로 넘어가며 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언제 울었냐는 듯 그녀는 옅게 미소짓고 있었다. 못박힌 듯 가만히 서 있는 에드워드에게 아라는 느릿한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작게 속삭이듯 문장 하나를 읊었다. 애드, 마지막 악보는 네가 가졌으면 한다. 에드워드는 숨을 멈추었다. 그 말은.
"...아렌 한."
"아렌 한은 제 오라버니십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
"닥치세요. 구차한 변명은 필요 없어요. 아렌 오라버니는 당신 때문에 돌아가신 겁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에드워드의 목에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손가락은 마치 바이올린의 줄감개를 돌리듯 부드럽게 목덜미를 매만졌다. 에드워드는 눈을 감았다. 금방이라도 이 여자가 자신의 목을 조르며 넘어뜨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길래."
아라가 에드워드의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그는 눈을 떴다. 시선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얽히고 있었다.
"우리 학원은 교칙에 아주 엄격합니다. 넥타이는 잊지 말고 반듯하게 매고 다니도록 하세요. 애드."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마.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신입생에게 해 줄 아주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디서 꼰대질이야?"
"아무튼 내일 여섯 시에 이곳, 음악실로 오도록 하세요."
"난 하겠다고 한 적 없다고!"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에드워드의 가슴에, 아라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던지듯 안겼다.
"당신이 이제 와서 무슨 낮짝으로 벨더 학원에 입학하신 지는 모르겠지만, 제 말에 따르시지 않으면 큰 코 다치실 거예요. 아렌 오라버니보다도 끔찍하게."
"아라... 너, 무슨 일을 꾸미고 있어."
"꼴에 바이올린을 쭉 잡지 않으신 모양인데, 체면 지키시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연습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그녀는 에드워드의 질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차갑게 돌아선 아라는 구두 소리를 내며 음악실을 나갔다.
"...나는 그 녀석을 찾으러 왔는데...... 왜 저 여자가 여기 있는 거야."
에드워드는 앓는 소리를 냈다.
도전해보고 싶은 거였긴 했는데. 생소한 소재라 쓰기 아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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